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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하제
김백경은 김강휘가 없는 스물한살의 류선재를 보며 김백경 없는 서른하나 류선재의 삶을 가정해봤다.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김강휘가 몇 번이고 가정해본 삶이기 때문이었다.
류선재는 연지우와의 관계가 틀어질 일이 생기지 않고… 어쩌면 이후 연인관계로 발전할 지도 모른다. 연지우의 비틀어진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고, 알아차린다하여도 끊어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눈썹 끄트머리 찢어진 흉을 달고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모든 일이 순탄히 흘러가진 않는다 해도 적어도, 김백경이 함께인 삶보다는 나으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김백경은, 가정했던 삶이 실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결심했다. 여기서는 류선재와 만나지 말자고. 그저 먼발치에서 이 세계에 류선재가 존재하는 것만을 확인하고 자리를 피하자고.
“저기요.”
……내내 바라보던 이가 자신에게 멋없는 첫 마디를 꺼내기 전만 해도 말이다.
우리가 시작도 않았으면 좋겠어
김백경은 결코 이런 상황은 가정해본 적이 없었다. 요컨대, 정말로. 김백경의 목적은 오직 류선재가 존재하는가. 그것만 확인하는 게 다였다. 여기서 태평히 류선재와 얼굴 마주보고 앉아 할 말을 고르는 것은 김백경 계획 밖의 일이었다.
“혹시 저 아세요.”
“…아니?”
류선재의 질문도 예상 외였다. 김백경은 몸 절로 움찔하게 만드는 물음에 태연한 척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여기서는 모르는 사이니까 아닌 거 맞지. 김백경의 대답에도 류선재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본 적 없어요? 학생 모른다니까.
“그럼 왜 학교 앞에서 저 빤히 보셨어요?”
잘생겨서 봤지. 학생 집에 거울이 없진 않을 텐데 잘생긴 건 알 거 아냐. 근데 자의식 과잉이 좀 심하네……. 내가 뭐 학생보러 거기 간 줄 알았나? 누구 좀 만나러 간 건데. 누구요? 이 학교 학생이면 이름 알 수도 있을 텐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원래 이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류선재 성격에 이쯤하면 네네 했지, 이렇게 짜증나게 굴지는 않은 것 같은데. 더이상 류선재에게 해줄 말이 없었던 김백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었다.
“그것까진 알 거 없고. 어린 친구랑 이러기엔 내가 좀 바쁜 사람이라서 가볼게? 수고해요, 학생~”
덧붙인 말에 류선재 얼굴에 얼이 빠졌다. 그 표정을 진득히 눈에 담은 김백경은 그 길로 카페를 나와 근처에 대둔 차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마자 길게 숨 내쉬는 건 덤이었다.
아냐니, 존나 잘 알지……. 붙어먹은 게 몇 번인데 내가 너를 모르겠어, 선재야. 김백경은 아까 코앞에서 본 류선재의 얼굴을 떠올렸다. 약간 날 선 목소리로 툭툭 뱉는 류선재는 그 시절, 처음 만났을 때를 연상시켰다. 그때도 사람을 이상하게 보더만, 성격 참 어디 안 간다. 김백경은 핸들에 고개를 처박고 맥없이 웃었다. 감도 좋은 놈. 시동이 걸린 차는 한참이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
“아, 또 보네.”
김백경이 제 앞을 가로막은 류선재를 보고 대수롭지 않은일인듯 말했다. 지 버릇 못 고치고 또 류선재 보고 싶어서 기웃대다 들킨 건 아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우연이었다. 류선재가 이곳에 있는지도 몰랐던 김백경을 먼저 찾아낸 게 류선재였으니까.
“진짜로 저 몰라요?”
류선재는 자신이 계속 걸렸던 모양이다. 옆으로 몸을 틀어 앞질러가려는 김백경에게 진득하리만치 따라 붙었다. 진짜로?
“학생, 되게 끈질기네. 학교가 재미 없어요? 아님 너무 한가해서 미치겠어?”
학생 때는 학점 관리하는 것만으로 바쁘지 않나? 학점 관리래, 완전 꼰대 같아. 입술을 쭉 내밀고 툴툴거린 류선재가 말했다.
“어디서 본 것 같아서 그래요.”
“없다니까는. 그리고 학생이 나 본 적 있음 바로 기억했겠지. 이 얼굴이 어디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하고 말 얼굴인가?”
“헐…. 형은 원래 그렇게 근자감이 넘쳐요?”
“근자감은 아니고 사실적시지. 근데 언제부터 봤다고 형이야, 내가.”
“어제 봤잖아요. 그리고 형도 자꾸 반말 섞어 말하고 있으면서…….”
“내가 그랬나? 아무튼 내가 학생한테 형으로 불릴 군번은 아닌데. 차라리 아저씨라 불림 모를까.”
그렇다고 나 부르란 건 아니고. 형이고 아저씨고 그냥 날 그만 불러요. 뒷말은 들은 채도 안 하고 류선재가 물었다. 몇 살이길래 아저씨예요? 알아서 어디 써먹으려고. 국 끓여먹게요. 아서라. 저는 스물한살 류선재인데 형은요? ……. 제가 먼저 말했는데도 안 알려줘요? 이거 먹튀인데. 저를 아주 투명인간 취급하던 얼굴이 옆에서 짹짹대고 있는 꼴을 보자니 적응이 안 됐다. 애시당초 류선재는 김백경 소문에 의거, 생겨먹은 얼굴에 추가 적립한 편견 때문에 김백경을 투명인간 취급한 거였으니 전자의 연유를 빼먹으면 류선재가 그렇게까지 저를 경계할 일이 없기야 하겠다만 이건 경계를 얼마 안 하네, 수준이 아니라 그냥 경계가 없었다. 낯선 어른 쫄쫄 따라가는 어린아이 마냥. 지금 김백경 나이 기준으로 21살 먹은 류선재가 어린 애는 맞지만서도.
생겨먹은 건 지금이 더 편견 갖기 쉽지 않나? 게다가 23살 김강휘면 몰라도 33살 김백경은 생긴대로 노는 게 맞았다. 진실로 깡패새끼가 다 되었으니, 류선재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부류였다.
“…서른 셋. 이름은 김백경이고.”
와…. 서른 셋이면 저랑 딱 띠동갑인가? 형 진짜 동안이네요. 그래도 형이라고 부르면 안 돼요? 형이든 아저씨든 부르지 말라고 방금 말하지 않았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홍길동도 아니고 형을 형이라 부르는 건 제 맘이죠. 아, 그러세요. 학생이 또 나 부를 일이 있을까 싶은데.
“이름도 말했는데 왜 학생이라 해요. 선재야, 해줘요.”
“아까부터 이러네. 우리 친해?”
“친해지면 되죠.”
“허어…….”
정말 막무가내가 따로 없다. 내가 나이를 먹은 탓일까, 아니면 네가 아직 때묻지 않은 채여서 그런 걸까. 똘망한 눈이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여기에서는 류선재와 엮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게 며칠인데, 류선재는 슬금슬금 김백경에게 다가왔다. 김백경이라고 류선재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니,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걸까 의중이 짐작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김백경은 아직도 이곳의 류선재와 가까워 질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류선재의 안온한 삶을 위해서라도.
“학생…, 아니, 선재야.”
“……네?”
멍하게 저를 바라본다. 선재야, 해달랄 때는 언제고 막상 선재라 불리니 맹해지는 거 하고는.
“혹시 내가 마음에 들었어?”
“네, 네?”
“아니, 계속 어디서 본 적 있냐고 하는 거…. 일차원적인 수작 방식 아닌가 해서. 지금 나한테 수작 부려?”
“…뭔 소리예요. 진짜로 본 것 같아서…….”
류선재의 귀가 붉어진 것 같았다. 김백경은 방향을 돌렸다. 류선재가 이이상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일찌감치 끊어내버리자고. 류선재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처럼…. 류선재가 그리도 싫어했던 김강휘의 가벼움으로 무장해서…….
“그렇게 내가 마음에 들면, 나랑 한 번 자볼래?”
이건 확실히 수작 맞아. 류선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싫다고 하면요? 앞으로 우연히도 볼 일 없겠지. 꼴랑 두 번째 본 사이에 형은 할 수 있어요? 한 번 보고도 할 수 있는 게 사람인데 두 번이 대수일까. ……. 안 할 거면 그냥 가고, 할 거면 내 손 잡아. 김백경이 류선재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류선재는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이다 침묵했다. 움찔거리던 손은 이윽고, 김백경의 손을 약한 힘으로 쥐었다. 김백경이 제 손을 잡은 손을 힘주어 잡고, 그를 이끌었다.
도착한 곳은 둘이 대거리한 골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무인텔이었다.
룸 안으로 들어온 김백경이 류선재의 손을 놓고, 가타부타 말 없이 훌렁 옷을 벗어던졌다. 그에 류선재가 기겁했다. 아니, 뭐 그렇게 무드 없이 벗어요. 그럼 사귀지도 아닌 사이에 수줍게 벗을까? 숫처녀처럼 굴기라도 해줄까?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딴지 걸지 맙시다. 우리 여기 꽁냥대러 온 게 아니라 섹스하러 온 거야, 선재야.
김백경이 알기로 이 시점의 류선재는 처음이 아니었을 텐데, 쭈뼛대는 모습이 정말 어린 동정 따먹는 죄책감 들게끔 했다. 쯧. 짧게 혀를 찬 김백경이 상의를 훌러덩 벗어던져 상체를 내보인 상태로 류선재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류선재 앞섶에 손을 올려 하나하나 단추를 풀어내렸다. 류선재는 여전히 굳어있었다. 처음이야? …남자랑은요. 가르칠 거 많겠네. 나도 너랑 하면서 몸으로 익힌 게 다긴 하지만. 뒷말을 삼킨 김백경이 단추 푸른 류선재의 셔츠를 젖히며 입술을 맞댔다. 가볍게 붙었던 입술이 금방 떨어져나가고 김백경이 속삭이듯 말했다. 사실… 여자나 남자나 똑같아. 쥐고 흔들고 박고 싸고…, 그러면 돼. 손, 내 허리 감싸고. 류선재를 어르고 달래듯 말하는 김백경이라. 그때와는 완전히 반전된 상황이었다. 나한테 다시 키스해볼래? 류선재의 양뺨을 감싼 김백경이 입술이 당장이라도 부딪힐 거리에서 속삭였다. 허리를 감싸게 했던 손이 뒷목을 감싸안고, 이가 얼얼할 만큼 갈급하게 입술이 겹쳐졌다.
*
역시 어린 게 장사긴 하다. 고작 나이 2살 밖에 안 났던 김강휘도 버거워했던 류선재를, 2살하고도 10살이 더 차이나는 김백경이 버텨낼 리 만무했다. 심하게 건강하기도 하고.
연이은 사정으로 인해 탈력감으로 몸이 무기력해진 김백경이 반쯤 눈을 감은 채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제 옆에서 담배를 태우는 김백경을 힐끔 본 류선재는 별 말 안 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듯이.
“근데 형….”
“아저씨라니까.”
“형은 해 봤죠. 아니, 그니까. 솔직히 여자랑은 해봤을 것 같은데……. 그, 남자….”
“남자랑도 해봤냐고?”
“네…….”
“뒤라도 아다길 바랐다면 유감인데 이쪽도 애진작에 뗐어.”
“…언제 했는데요? 많이 해봤어요? 누구랑 했는데요?”
거울 봐라. 누가 떼갔는지…….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김백경은 류선재와 처음 했던 기억 떠올리며 스물셋, 했다.
“그게 끝이에요?“
“아니.“
해본 상대 말하면 그게 끝이긴 하다. 근데 같은 사람이랑 여러 번 해봤고 그게 너라고 할 수 없어서 문제지. 과거 캐는 오빠는 찌질해서 멋 없는데. 김백경이 그러니까 류선재가 펄쩍 뛴다. 형은 진짜 왜 사람이 닳고닳은 것처럼 말하냐 난리다.
“그럼 이 나이에 내가 이 얼굴 가지고 닳았음 닳았지 깨끗할 것 같냐.“
그러면서 제 턱도 한 번 쓸었다. 걸레창놈처럼 구는 건 익숙했다. 김강휘가 어떻게 살던간에 김강휘는 어디에선 호빠선수였고 어디선 나이트 삐끼였고 어디서는 부잣집 사모님 세컨드였으니 생긴대로 살 것처럼 대충 아가리 털면 얼추 믿었다. 그건 류선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뭔놈의 어린 놈이 이렇게 편견만 그득그득 찼는지. 하기야. 그때도 자신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이랑 할 거예요?”
“한 번 했다고 무슨 남자친구처럼 구네…….”
재떨이에 담배를 지져끄고 중얼거리니 류선재가 상체를 껴안는다. 땀 흘린 몸이 나체에 쩔떡거리며 들러 붙었다. 땀도 흘렸는데 좀 놓지. 싫어요. 선재야. 우리 이제 두 번 봤다. 왜 이렇게 애틋하게 굴어.
“…전 그냥 형 처음 봤을 때부터 좀… 기분이 이상했어요. 본 적 있는 것 같고. 형 말마따나 진짜로 마주친 적 있었으면 정확히 기억했을 것 같은데 심증만 있고……. 근데 정말로 형이 낯설지가 않아요.”
어느새 김백경 어깨에 얼굴 묻은 류선재가 웅얼거리자 류선재가 뱉어내는 숨결이 어깨를 간지럽혔다. 그 접촉에 류선재의 머리를 밀어 떼어놓자 순순히 고개를 든 류선재가 김백경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나는 형이 좋은 것 같은데요. 세 번 보고 싶고, 네 번 보고 싶고. 더 보고 싶어요. 아니, 걍 알아가고 싶다고 해야하나…. 이런 것도 나랑만 했음 좋겠고…….
“제가 생각해도 이상한 거 알아요. 형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이랑 나이밖에 없는데 형이 좋은 걸 어떡해요.”
첫 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건가봐요. 김백경은 저 눈이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 이미 마주한 적 있는 눈이기 때문이었다. 류선재는 눈빛만으로 김백경에게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김백경은 그 올곧은 눈을 앞에 두고 뒤질 것 같았다.
너는 대체 왜 씨발… 이 꼬라지인 내 모습을 보고도 나에게 사랑을 말해. 좆같은 새끼 하나 네 인생에서 썩 꺼져준다고 하면 기다렸다는듯 쳐내야지 왜 사람을 붙잡고 늘어져.
김백경은 류선재 사랑이 달갑지 않았다.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달려드는 사랑은 류선재가 아직 때 묻지 않았다는 증표였다. 솔직함으로 무장한 스물하나의 삶에 유의미한 인간이 되기에 서른셋 김백경의 삶은 너무 지저분했다.
그게 김백경이 류선재와 엮이길 거부한 까닭이었다. 이제와 엮이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었지만.
류선재와 김백경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서로 다른 시간선을 갖고 있다는 것보다도 더 큰 간극. 류선재와 김백경의 삶은 너무도 다르다. 김강휘일 적의 김백경이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이었다.
류선재와 김강휘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아무리 진득히 몸을 섞고, 사랑을 속삭인다하더라도 태생이 만들어내는 간극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류선재는 평생 김강휘의 바닥을 알 지언정, 진정으로 김강휘의 바닥을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다. 그건 김강휘가 김백경이 된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에 둘은 타인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사실은. 내가 이렇게라도 이 순간의 너와 다른 거 걱정할 필요 없는 연인이 되고 싶었어. 우리가 시작도 안 했음 좋겠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야. 너와 사귀면서 다른 걸 걱정하고 싶지 않았어.
우리가 시작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게 진심일리가. 비록 여기 있는 류선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현재지만, 김백경은 기억하고 있었다. 류선재가 김강휘에게 어떤 식으로 사랑을 전했는지. 김백경을 어떻게 사랑했는지……. 머리로 알고 있는 감정이, 바란다고 해서 사라질리 만무했다.
김백경이 기억하고 있는 이상, 류선재가 먼저 다가온다면 내칠 재간이 없었다.
시작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 자신 없는 류선재의 삶이, 김백경과 함께한 삶보다 나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고, 욕심이었으나……, 류선재는 평생 알지 못할 지나간 과거였다. 이곳의 류선재에게는, 지금이 둘의 시작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너를 사랑해도 될까? 내가 아니었다면 네가 다칠 일도 없었을 텐데…….
류선재가 김백경의 양 손목을 붙들었다.
“다른 생각은 안 하면 안 돼요?”
“….”
“해봤다는 그 사람… 이 걸리는 거예요?”
“아니,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
어차피 그게 너니까……. 내 처음은 전부 선재, 너였으니까. 류선재 너는…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럼 뭐가 걸려요?”
형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거… 그게 걸리는 거예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나 보는 형 눈도 심상치는 않았는데.
“누가보면 절절하게 사랑하는 사람 보는 눈이었어요. 형이 나 볼 때.”
“…….”
아님 뭐, 내가 지나간 인연을 닮았나…….
얼추 맞는 말이긴 했다. 닮은 정도가 아니고 그 놈이 그 놈이라는 걸 빼면….
“당장 시작하자는 건 아니고. 걍 나는 형 좋은 것 같으니까 형도 저 마음에 들어했음 좋겠다는 건데…, 그것도 안 돼요? 모텔 나가도 아는 사이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류선재의 목소리는 김백경 머릿속의 욕망을 거침없이 건드렸다. 네 삶이 적어도 나와 함께일 때보다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토록 사랑스러운 네 모습이 10년 후에도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흉터 하나 없는 네 앳된 얼굴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곳에서는 부디 평탄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럼에도 내가 네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네가 여기서도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 너의 행복을 기원하며 애써 묻어두었던 이기적인 욕망을.
내 인생은 이렇게 시궁창 같아서, 너와 함께였던 순간이 없었다면 더 빠르게 무너졌을 지도 모르는데. 네가 있어서 좋은 기억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미련하게 너 하나를 못 놓고 구질구질하게 구는 것 뿐이었는데. 선재 너는 그게 아니잖아……. 나로 인해 잃어놓고도 너는 왜….
씨발…
류선재 너는 어디서든 나를 사랑하는구나…….
김백경의 고개가 아래로 떨궈졌다. 어쩐지 금방이라도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김강휘를 모르는 류선재조차도…, 제가 알던 그 류선재와 다를 바가 없어서 김백경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맨 어깨 위로 묵직한 팔이 올라와, 결박하듯 몸을 끌어안았다. 빈틈없이 김백경을 품에 안은 류선재가 말했다.
“좀 느려도 좋으니까… 그냥 저랑 만나요, 형. 벌써부터 형이 되게 좋은데 계속 보다보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그럼 형도 저 좋아지지 않을까요….”
“뭐라는 거야…….”
나는 류선재 니 이미 좋아해…. 좋아한지가 언젠데. 여기서 더 좋아지면 나는 진짜로 좆 돼……. 김백경이 울고 있다고 오해한듯 간간이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열두살이나 어린 새끼가 답지 않게 위로하고 앉았네….
예고없이 팔을 든 김백경이 류선재의 뒷목을 휘감았다.
“류선재….”
“우는 줄 알았는데.”
나는 분명 말했어. 놓아줄 생각도 했고. 이번에는 나 없이 어디 한 번 존나 잘 살아보라고 못 본 척도 하려 했다. 네?
“근데…, 그 기회 다 걷어찬 거 너야.”
사랑해도 된다고 한 건 너니까, 이제 이거 무르지도 못 해. 내 성격 좆같이 이상하고 빡치고 내가 지독할 만큼 싫어져도 나는 너 못 놔. 이미 한 번 놓으려 했으니까. 류선재가 알 수 없을 말을 한참 되뇌이듯 중얼이던 김백경이 류선재의 아랫입술을 물고 안쪽으로 혀를 쑤셔넣었다. 유독 뜨거운 온도를 가진 안쪽을 샅샅이, 탐색하듯 훑는 혀에 김백경의 몸을 끌어안고 있던 팔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김백경의 움직임에 따른 동조는 한 발 늦게 이어졌다. 류선재는 숨 쉴 틈을 내어주지 않는 혀를 달래듯 감싸 빨았다. 으응……. 벌어진 입술 새 가느다란 숨이 새어나왔다.
이윽고 입술이 떨어지고…, 붉어진 목을 한 채로 팔을 교차해 류선재가 그렇듯, 류선재의 몸을 포박한 김백경이 귓가에 달큰한 숨처럼 뱉어냈다.
“그니까 씨발…, 우린 이미 시작했다고. 선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