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719

W. 리하

 “지우는 괜찮으려나.”

 류선재는 괜히 등굣길을 뒤돌아봤다. 그는 지금 3년간 다니던 중학교가 아닌 이번에 입학한 고등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알고 지낸 이들보다는 새로운 친구들과 인연을 만들어갈 기대감으로 설렐 법도 한데 아무래도 류선재는 걱정이 앞섰다. 그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는 이웃집에 살고 있는 연지우였다. 연지우는 류선재보다 딱 한 살 어린 16살이었다.

 작년에는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라 다른 학년이었음에도 자신이 챙겨줄 수 있었다지만 올해는 달랐다. 나이 차이라는 건 한 살이든 두 살이든 극복하기 어려운지라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갈라지는 상황 같은 건 류선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작년처럼 연지우를 알뜰살뜰하게 챙겨주는 건 어려울 터였다. 학교 내에서 챙겨주는 건 못하니 하교 때라도 데리러 갈까. 류선재는 타인이 보면 제법 유난이라고 생각할 법한 일을 벌이려다가 이내 고등학생부터는 야간자율학습이 존재함을 떠올렸다. 야간자율학습, 일명 야자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뺄 수도 없었고, 설사 뺄 수 있는 사유더라도 부모님의 허가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전 전 여자친구였던 고등학생 누나와는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자주 맞지 않아 결국 헤어졌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니까 연지우의 하교시간에 맞춰 데리러 간다는 상황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다.

 주말에라도 잘 챙겨줘야겠다. 사실 연지우가 하굣길까지 걱정할 정도로 못미더운 건 아니었지만 첫인상이라는 게 사람 안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처음 만났을 때 연지우는 덩치가 작고 주눅이 들어있었다. 지금에야 많이 밝아지고 활달해졌다고 해도 그 모습은 뇌리에 똑똑하게 박혀있어서 그런지 도와줘야하고, 아껴줘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 말마따나 조금 과하게 싸고도는 건가 싶다가도 연지우를 방치하는 건 더 아닌 것 같았다. 만약 제가 연지우를 방치했다가 다시 예전처럼 눈치를 보며 주눅 들어 다른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면 류선재는 분명 밤잠을 설칠 게 분명했다. 차라리 지금처럼 연지우를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기며 현상 유지라도 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을 끊어내며 학교 정문을 통과했다.

 류선재는 7반에 배정됐다. 1학년 교실은 3층도 4층도 아닌 5층에 위치했다. 3학년들이 생활하는 층이 3층인 걸 고려하면 아무래도 수험생들을 배려한 것 같지만, 그건 3학년이 되어서야 느끼는 감정이고 지금 류선재는 계단을 5층이나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계단을 오르다가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발을 헛디뎌서 그대로 굴러떨어지면 입학식 첫날부터 쪽팔림과 더불어 아프기까지 할 텐데. 운 나쁘면 입학식에 참석하는 게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할 터였으며, 이후 학교에는 입학식 날 계단에서 굴러서 병원에 실려 간 신입생이 있다는 말이 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해프닝은 피하고 싶어 괜히 계단을 오를 때 다리에 신경이 쏠렸지만, 류선재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은 본인이 180cm가 넘어가는 건장한 체격에 웬만한 이들보다 체력도 아주 좋은 편이라는 거였다. 다섯 층 정도는 우습게 올라가고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몸을 가진 자의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건 류선재 본인만 몰랐다.

 어찌 됐든 류선재는 발을 헛디뎌 구르는 일 없이 5층까지 무사히 올라와 제가 배정받은 7반으로 향했다. 아는 얼굴이 있으려나? 애당초 이 고등학교로는 친구들이 많이 진학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볍게 안면만 튼 친구 하나라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불쑥 솟을 것 같았다. 남자애들은 운동하면서 몇 번 살을 부대끼면 금방이고 막역지우처럼 대하게 되고, 여자애들과도 어울릴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큰 문제 없이 친해질 수 있었지만, 이건 그냥 개인의 기분 문제였다. 낯선 공간에 혼자 떨어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아는 얼굴이 함께인 게 마음이 괜히 더 편하지 않은가. 아무리 타인과 쉽게 친해지며 관계를 쌓아나가는 류선재라도 낯선 이보다는 친숙한 이와 대면하고 있는 게 좋았다. 그리고 그의 바람을 들어주기라도 한 듯 모르는 얼굴이 가득한 교실 내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그것도 제법 안면을 튼 사이다.

 “야, 김재하.”

 

 어깨를 툭 치자, 김재하가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든다. 김재하 또한 류선재의 얼굴을 보자 반갑다는 듯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무래도 사람 심정은 다 똑같은가 보지. 류선재는 자연스레 김재하의 옆 책상에 가방을 두고 자리를 잡았다. 그 또한 류선재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 모양새다. 공통된 화제로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곧 앞자리에 앉아있던 이와도 말을 텄다.

 자잘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곧 성인 남성이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러나 자신들이 더 중요한 사춘기 청소년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있었기 때문일까. 그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건 찰나고 다시금 관심은 흩어졌다. 류선재 또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쪽에 더 신경이 쏠렸다.

 물론 그런 학생들을 상대한 경력이 긴 남성은 왁자지껄한 교실을 교탁 옆을 크게 몇 번 두드려 순식간에 정적을 끌어냈다. 교실이 조용해진 틈을 타 교사는 한 해 동안 이 학급을 맡는다는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어쩌면 중학생 때도 매년 새 학기마다 비슷하게 들어 지겨울 수 있는 이야기를 간결하게 끝맺은-간결하게 끝냈다고 지루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교사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학생들을 모두 일으켜 복도에 두 줄로 세운 후, 다른 반 뒤를 이어 강당으로 이동했다.

 지루한 학급 소개에 이어 지루한 입학식은 류선재로 하여금 입을 쩍 벌려 하품을 하게 만들었다. 제아무리 아버지처럼 멋진 형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지만, 느릿한 말투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질질 끌어대는 교장의 연설 같은 건 싫었다. 차라리 술에 취해서 들어오시면 류선재 자신과 류선희를 앉혀놓고 시작하는 길고 긴 아버지의 주정이 보는 재미는 있었다.

 겨우 입학식이 마무리되자, 남은 일정 같은 건 없었다. 내일부터는 정상적으로 일과가 운영되니까 오늘을 즐겁게 보내라는 교사의 말과 함께 고등학교 첫날은 끝이 났다.

 이후 류선재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갔는데, 이는 중학생 때 존재하지 않았던 야간자율학습이 한몫 했다. 아침 일찍 등교해서 밤늦게 하교하는 생활이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연지우를 챙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만 그런 행동 또한 생활에 적응하여 빈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수긍했기 때문에 류선재는 연지우를 주말에나 알뜰살뜰하게 챙기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난 후 류선재는 알게 모르게 깨달을 수밖에 없는 사실들이 있었다. 우선, 제 진로를 위해 들었던 선도부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똥군기라던가. 잡을 거면 모두 다 잡지, 자기들끼리 누구는 넘어가고, 또 누구는 쥐 잡듯이 잡으려고 하는 모순도 그렇고. 참을 수 없는 현장들을 목격하여 속에서 열이 올라오는 게 벌써 여러 번이다. 옆에서 함께 선도부에 들어 친해진 친구가 참으라고 막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슨 일이 벌어져 꼬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감춘다고 감췄지만, 삐딱한 시선을 저 인간들도 분명 느꼈으리라. 하지만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게 누군데. 류선재는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고자 했기 때문에 잘못한 건 그들이었다.

 여하튼 류선재는 모순덩어리 선도부 선배들과 함께 이른 아침마다 교문 앞에 서서 선도부 활동을 열심히 이어 나갔다. 중간중간 트러블도 일어날 뻔했지만 미수로 그쳤으니 넘어가자. 그러던 나날이었다. 그날도 똑같이 교문을 통과하는 학생들의 복장을 확인하고, 붙잡고, 이름을 묻고, 작성하고.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강휘 선배! 김강휘 선배님!”

 

 평소에는 아침 활동도 귀찮아하며 반쯤 감긴 눈으로 서 있던 선배가 목소리를 높여 이름 석 자를 불렀다. 그 모습이 제법 생소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저 선배의 태도가 훅 변하게 하나 싶었다. 그리하여 선배의 시선 끝을 따라간 곳에 있었던 김강휘, 라고 불린 선배는 눈에 확 띄는 이였다. 주변 학생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했다.

 

 자신의 이름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그 사람은 곧장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분명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교복일 텐데 혼자만 다른 세상 사는 종족도 아니고 맞춤 교복을 입은 것 같았다. 몇 걸음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훌쩍 가까이 다가온 김강휘 선배는 멀리서 볼 때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생겼기에 류선재는 떡 벌어지려는 입을 막는 데 집중해야만 했다. 류선재가 옆에서 아닌 척 김강휘를 감상하는 동안 선도부 선배와 김강휘는 가벼운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 사소한 내용이라 굳이 등교하던 사람을 불러세워서 할 내용인가, 싶었지만. 김강휘 선배는 선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다음에 볼일 있으면 또 보자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학교 본관으로 향하는 김강휘 선배와 어쩐지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았지만 안면을 튼 사이도 아니어서 류선재는 저 스스로의 착각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렇다고 그 찰나 사이에 시선을 빼앗기게 만들었던 사람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는 성격 또한 아니어서 류선재는 아직 대화의 여운에 빠져있는 표정을 한 선도부 선배에게 말을 꺼냈다.

 

 “선배, 누구예요?”

 “아, 너는 모르겠구나. 김강휘 선배라고, 올해 3학년.”

 

 김강휘. 류선재는 입 안에서 이름을 조심스레 굴려보았다. ‘강’은 딱딱하게 떨어지면서 ‘휘’는 부드럽게 쭉 이어진다. ‘선’에서는 부드럽게 이어지다가 ‘재’를 발음하자마자 딱 끊어지는 제 이름과는 다른 게 오히려 특별한 것 같았다. 원래 서로 다른 사람이 끌린다고 하지 않는가. 류선재는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은, 심지어 다른 사람이 대화하던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누군가는 금사빠 아니냐며 비꼴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류선재를 금사빠라는 단어로 섣불리 칭하기도 웃긴 게, 김강휘의 얼굴을, 목소리를, 무엇보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를 겪고도 관심이 가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무생물 그 자체일 게 틀림없었다.

 

 “선배는 저 선배님이랑 어쩌다 알게됐어요?”

 “선배님이 오지랖 부려서. 소문이 왜 그렇게 퍼졌는지 모르겠다니까. ”

 “소문이요?”

 

 얼굴값 한다던가. 싸가지가 없다던가. 여자친구를 밥 먹듯이 갈아치운다던가. 뭐, 그런 질 낮은 소문들 있잖아. 선배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소문들을 꼽다가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싸가지가 없기는. 그냥 다 헛소문 나부랭이지.”

 

 그 이후로도 선도부 선배는 자신이 김강휘에게 얼마나 인간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류선재는 그 말들을 잘 기억해두었다. 적당히 요약하면 존나 잘생겼으면서 착하고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거잖아. 류선재는 내일도 모레도 김강휘 선배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한 가지에 집중하게 되면 신경이 온통 한쪽으로 쏠린다는 게 딱 이 모양이다. 류선재는 말도 걸지 못하는 주제에 김강휘가 등교하는 순간들을 귀신같이 포착했다. 차라리 그가 복장이 불량하기라도 하면 그걸 핑계삼아 말이라도 붙일 텐데. 김강휘 선배는 너무나도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등교해 말을 붙일 시도 조차 어려웠다. 그래도 그런 점들을 좋아해서 류선재는 아쉬움만이 있을 뿐 원망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이 훌쩍 찾아왔다.

 

/ / /

 “선재야, 선생님이 지금 급하게 출장을 가야해서 그런데 옥상 한 번만 확인해주고 가겠니?”

 

 확인하고 난 이후에 옥상 열쇠는 저기 부장 선생님께 드리면 돼. 선도부 지도교사는 서류들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우리 선재가 믿음직스러우니까 부탁하는 거야. 부탁 좀 할게.

 

 찰랑. 류선재의 손에 옥상 열쇠가 들어왔다. 류선재는 열쇠를 바라보다가 교사에게 알았다며 수긍했다. 교사는 고맙다며 선재를 잔뜩 칭찬하는 말을 늘어놓고는 짐을 다 싸자마자 가방을 들고 급하게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정작 차키를 두고 가서 곧 다시 돌아왔지만 말이다.

 

 류선재 또한 오래 머무르지 않고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에 쥔 열쇠가 잘그락거렸다. 빠르게 확인하고 가야지. 류선재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얼마 지나지않아 옥상으로 향하는 철문이 시야에 들어찼다. 잠겨있는지 확인 차 손잡이를 잡고 옆으로 돌렸다. 중간에 걸리는 게 있었다면 미련 없이 옥상 문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털레털레 내려갔을 텐데. 잠겨 있어야 할 옥상 문은 너무나도 쉽게 열렸다.

이렇게 쉽게 열린다고? 류선재는 학교 보완에 대한 불신을 느끼며 옥상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것이다. 오늘 아침까지도 류선재의 온신경이 쏟아지던 그 존재를 말이다.

 김강휘 선배가 옥상에 있었다.

 

 손가락 끝에 달랑달랑 걸려있는 담배는 덤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그 존재에 대한 인지부조화로 멈춘 류선재를 김강휘가 바라본다. 김강휘는 옥상 문 근처에 서 있는 류선재를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곧 고개를 돌린다. 담배를 들켜 놀랐다거나 당황한 표정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손가락 끝에 걸려있던 담배를 다시금 입에 물고, 숨을 쭉 들이켰다가 연기를 후, 내뱉는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건가? 입 안에 머금은 연기를 내뱉는 김강휘는 그 모든 것을 의도한 것마냥 화보 같았다. 저런 모습을 타인이 눈에 담았다는 걸 생각하니 류선재는 그 사실이 못내 불쾌해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웃기지 않는가. 지금 미성년자가 담배를 피는 현장을 목격한 건데 류선재가 거슬려하는 건 담배 냄새도, 담배에서 피어오른 연기도, 하얀 담배의 존재도, 심지어 담배를 피는 대상 마저 아니었다. 류선재는 명백하게 질투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았을 그 누군가를 말이다.

 

 “…누구?”

 

 그래서 약간의 텀과 함께 돌아온 김강휘의 물음에 류선재는 단숨에 대답하지 못하고 딴소리나 해댔다.

 

 “다른 사람들도 선배님이 이렇게 담배 피는 거 알아요?”

 

 엇, 이렇게 물어볼 건 아니었는데. 누가 보면 약점 잡고 시비 걸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런 걸 왜 물어보지? 음, 내가 담배를 피든 말든 그게 후배님이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않나요?”

 “제가 선도부니까요.”

 

 신경을 안 쓰면 직무태만이고, 애초에 학생이 담배 피면 안 되는 거…. 류선재의 말이 이어질수록 김강휘는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옥상 난간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성큼성큼 류선재에게 다가와 그의 앞에 섰다.

 

 “그래서 우리 깜찍한 후배님은.”

 “…….”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건데요?”

 

 멘솔 특유의 향을 풍기며 김강휘는 웃었다. 훅 치고 들어오는 김강휘에 머릿속에서 정제되지 않은 말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막은 류선재는 제 앞에 선 김강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김강휘가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핸드폰요.”

 

 핸드폰은 왜…? 김강휘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류선재의 손에 올려두었다. 류선재는 폴더를 열었다. 바꾸지도 않은 배경화면이 류선재를 반겼다. 잠금도 걸려있지 않았다. 무방비해…. 류선재는 제 전화번호 11자리를 꾹꾹 눌러 저장한 뒤, 전화를 걸었다. 제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걸 확인하고 전화를 끊은 류선재가 김강휘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방금 뭐했어요?”

 “제 번호 저장해뒀어요. 저랑 연락하고 지내요, 선배님.”

 

 김강휘가 핸드폰을 열어 주소록을 켜자 몇 없는 연락처 상단에 처음보는 이름이 떴다. 류선재.

 

 “누가보면 저한테 관심있는 줄 알겠네요, 류선재 후배님.”

 “관심 있는 거 맞는데요.”

 

 저 선배님한테 관심 있어요. 그러니까 연락하면 받아줘요. 류선재는 그렇게 말하고 곧장 뒤돌아 옥상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옥상에는 김강휘 혼자만 남았다. 김강휘는 류선재의 말에 현실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 만난 이가, 그것도 남자 후배가 관심 있다며 고백에 가까운 발언을 하고 사라지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김강휘는 관심 있다는 말과 류선재의 이름을 한참을 곱씹고 나서야 옥상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여름이 성큼 다가와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던 어느 초여름날이었다.

내 사이트

©2023 by 내 사이트.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